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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하지만 의미있는 일상

김장에 가야 될까?

by 82년생 미화 2020.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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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주 일요일에 김장 김치를 버무리기로 했다. 저번 주에 하려고 했는데 비가 여러 날 오는 바람에 이번 주로 미뤘던 거다. 이번에는 남동생네는 빠지고, 친정 부모님과 언니네랑 모여서 버무리기로 했다. 김장 날짜를 맞춰 놓고 나니 코로나 확진자가 연일 많이 나오고 있다. 요 며칠 어떻게 해야 될지 잠을 못 이뤘다.

 하필이면 외할머니 댁도 우리랑 같은 날에 김장을 하신단다. 외할머니 댁 김장엔 서울, 경기도 쪽에 사시는 이모, 삼촌 할거 없이 모두 모일 거고, 김장이 끝나면 분명히 우리 친정집에도 인사차 들를 것이다. 급 불편해졌다. 이런 이모들의 행보가 다른 김장 때는 분명 문제가 될 게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않은가? 시골에 계신 부모님들께 이번에는 다른 거 없이 김치만 얼른 해치우고 각자 헤어져야겠다. 김장 김치에 수육 먹는 것도 안 되겠다.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겠다. 엄마가 좀 이해해달라. 혹시라도 이모들이 집에 들른다고 하면 이번엔 코로나 때문에 서로 조심하자. 다음에 보자. 이렇게 엄마가 중간에서 끊어주는 역할을 해야 된다. 이렇게 엄마께 말씀드렸더니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해는 하시면서도 내심 서운한 내색을 비치셨다. 시골 분들이라 코로나에 대한 경각심도 적고, 한 평생을 주변 사람들과 나눠 먹고, 얼굴 부대끼며 사는 게 익숙한 분들이라 아마 내 말이 서운하셨을 것이다.

 이렇게 저렇게 부모님께 당부의 말씀을 남기고 나니 내 마음도 좋진 않았다. 코로나가 불효자를 만드네... 형제간에 얼굴도 볼 수 없고... 나는 참 이 상황이 불편하다. 누군들 이 상황이 안 불편하겠는가.

 김장에 가야 될까... 눈 한번 꾹 감고 가지 말까? 누가 정확하게 답을 내려주었으면 좋겠다.
자식들 먹일 욕심에 가을 내 배추밭에 물 퍼다 날랐을 것이고, 이것 저것 준비하셨을 부모님을 생각하면 가야 되는 것이 맞는데... 혹시라도 내가 우리 부모님께 바이러스를 전파시키면 어쩌지... 내가 바이러스를 받게 되면 어쩌지... 자가 격리라도 해야 될 상황이 되면 우리 사업은 어떻게 되는 거고 우리 생활은 어떻게 되는 걸까? 작디작은 시골 마을인데 혹시라도 우리 집 식구 중에 누구라도 걸리면 마을 전체 코호트 격리 들어가는 거 아닐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문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님 두 분께 김장을 다 맡겼다간 쓰러지실 거다.

 

 다행인 건 시댁은 김장이 없다는 거다. 신혼 초에는 양가 번갈아가면서 김치 버무리느라 12월이면 바빴었는데 시어머니께서 몸이 힘들어지면서 각자 사 먹는 걸로 하셨다. 얼마나 다행인가? 이런 상황에 시댁까지 해야 됐다면... 생각만으로 숨이 막힌다.

 

 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엄마가 내 당부를 듣고는 고민이 돼서 잠 한숨 못 잤다는 거다. 이모들이 김장 끝내고 인사를 온다고 하면 어떻게 못 오게 하냐... 엄마의 성격에 힘들 거라고는 생각했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 김장에 안 가기로 했다. 김장도 중요하지만 내 일상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기에 나는 내 일상을 선택하기로 했다. 눈 한번 질끔 감으면 되지...

 


올해 초 코로나가 터졌을 때만 해도 이렇게 김장 때까지 길게 갈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일상 생활로 복귀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어쩌면 이제는 코로나 없는 삶은 옛날 일이 되어버린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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